개별대학의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교수학습을 지원하는 교내 기관이 한국의 각 대학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001년 대여섯 대학이 모여 상호 교류를 위해 시작한 비공식적 모임이 이제 회원대학 130여 개의 대규모 협의체로 발전할 만큼 교수학습지원 기관이 대학마다 활성화 되고 있다. 우리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 년 전 한동교육개발센터(HEDC)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교수학습지원기관이 확산되면서 이제 중요한 것은 대학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교수학습연구와 지원 활동의 특성화이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대학 내에 교육 관련 기관을 설립하였다가 그 역할이 모호해진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다양한 교육보조매체가 소개되기 시작한 80년대에는 한국의 각 대학마다 교육매체제작실이 유행처럼 설치되었다가 그 후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예도 있다. 교수학습 지원은 그 대학의 문화와 구성원의 특성과 맞을 때는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돕는 촉매의 역할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교육에 대한 구성원들의 노력과 관심마저도 약화시키기도 한다. 실제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는 교수학습센터가 구성원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보다 너무 앞서가서 부담이 누적되었던 교수들로 인해 해체되기도 하였다. 결국 개별대학의 교수학습지원은 그 대학의 문화와 구성원의 특성을 고려하고 그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며 동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교육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한동대학교에서 교수학습연구와 지원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기독교적 가르침과 배움을 추구하는 우리 대학에 걸 맞는 접근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공동체성 확산을 들고 싶다. 먼저 학생들에게는 배워서 남 주는 원리, 그로 인해 배움이 배가되는 기회와 훈련을 권하고 싶다. 실제 이번 학기 ‘선물공새: 선배들이 물려주는 공부법 for 새내기’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기술 세미나를 실시할 때에는 전문가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우리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터득한 학습법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접근을 시도하였다. 보고서작성, 발표기술, 시험준비 등의 주제로 발표할 선배를 모집하는 공고에 적잖은 학생들이 지원하였고 선발된 학생강사들은 열정적으로 세미나를 이끌어 참석자들의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내었다. 각각 다른 잠재력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대학 내에 있으므로 이들이 서로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장을 열어 자신의 강점으로 학우의 약함을 돕는 나눔의 학습이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나눔의 가르침이 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용이할 수 있다. 교수들은 이미 연구영역에서 나눔의 훈련을 받아온 자이다. 학술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의 필요, 진행과정과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그 곳에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고 피드백과 격려도 받으며 때론 점검과 평가를 받지 않는가. 교수는 지식을 창출해내는 연구뿐 아니라 지식을 창출해 낼 후배를 양성하는 교육의 전문가임을 강조하고 싶다. 교수의 개별연구가 나눔의 과정을 통해 지식으로 발전한다면 교육영역 역시 나눔의 과정을 통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무엇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의 주제는 여러 답이 있는 열린 질문이기에 더욱이 서로의 생각과 실천을 나누며 서로에게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연구의 결과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는 학회 활동이 교수의 연구활동을 돕는 것처럼,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피드백을 받아 교육활동의 성장을 돕는 교육 나눔의 장이 다양한 형태로 열리기를 기대한다. 다양한 유형의 수업사례를 온라인 상에서 혹은 소집단 모임을 통해 나누는 것도 좋은 접근이겠다.
유진 피터슨은 직업이나 직장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도덕관, 우리의 본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보고 믿기를 바라는 쪽으로 위장하고 선전하는 간판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각각 가르침과 배움이 직업이고, 하나님의 대학인 한동대학교가 그 장인 우리 교수와 학생들에게 ‘교수’와 ‘학생’이 정직하게 우리를 표현하고 있는지, 아니면 감추고 싶은 자신을 숨기는 역할을 하는지 학기의 끝자락에 돌아봄직하다.
'여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32호]이념논리가 잘못됐다던 총학의 이념적 성향 (0) | 2009/06/03 |
|---|---|
| [132호]“Love that dared not speak its name” (0) | 2009/06/03 |
| [132호]가르침과 배움의 나눔 공동체 (0) | 2009/06/03 |
| [132호]대학 순위와 한동의 경쟁력 (0) | 2009/06/03 |
| [132호]<맑은 눈> (0) | 2009/06/03 |
| [132호]한동을 만드는 한동인 (0) | 2009/06/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