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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 유혹하라, 스페이스 마케팅

필자가 6개월 간의 런던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지도 벌써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은 바쁜 학교 생활에 쫓겨서 과거를 회상하는 사치(?)를 누릴 기회가 많진 않지만 학교버스에 앉아 있을 때나 쉬는 시간에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런던을 추억하며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나는 왜 런던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사랑하게 되었을까?

서울과 그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처럼 런던도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갈라진다. 템즈강에 있는 관광용 크루즈를 타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 가이드가 쉴 새 없이 설명을 하고도 몇 개는 놓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템즈강 유역에는 런던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물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 템즈강의 하류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런던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초고층 빌딩이 밀집되어 있는 현대식 상업도시, 까나리워프와 강 위에 탑이 서 있는 듯한 타워브릿지를 얼마 지나지 않아 강 이북에 세계 2번째의 크기를 자랑하는 세인트 폴 성당이 자리잡고 있고 그 반대편엔 화력발전소로 사용되던 건물을 활용하여 테이트모던이라는 현대미술전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밀레니엄 브릿지가 템즈강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계속해서 템즈강의 따라 오래된 역사를 지닌 다리들을 지나다 보면 계란이 기울어진 듯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런던시청건물을 보게 된다. 조금만 더 강을 따라 올라가면 영국의 국회의사당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사원과 빅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반대편엔 137미터 높이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회전 놀이 기구인 런던 아이를 볼 수 있다.
과거의 전통과 역사적 산물이 현대의 모던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물들과 함께 하나의 문맥으로 하모니를 이루어 ‘런던’이라는 브랜드를 창조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더럽고 우중충한 오래된 도시’라는 이미지를‘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도시’로 바꿔 꼭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러브마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전략적인 공간 구성으로 그 공간만의 의미와 독창성을 창출하고, 이로써 의미 있는‘집객’을 유도하는 일련의 총체적 노력을 스페이스 마케팅이라고 한다. 스페이스 마케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인식’과‘경험’인데 이 두 가지 목표에 성공하면 소비자에게‘이미지’를 남겨줄 수 있게 되고, 또 이 이미지가 또 다른 호기심이나 기대감을 자극시켜 다시 이 공간을 찾게 되는 프로세스를 만든다. 이 인식과 경험은 가치와 경험이 창조되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제공될 수 있다.
영국 정부와 런던 시청은 2000년부터 시행한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통하여 런던에‘전통과 역사적 산물을 우려먹는 도시’에서‘신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도시’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와 건축 그리고 디자인을 통하여 인식과 경험을 제공하여 사람들에게‘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남겨 매년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유치함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뒤늦게나마 스페이스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닫고 2007년 5월 디자인서울총괄본부가 설치된 이후 디자인서울이라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 중에 있다. 이 사업은 기존의 기능과 효율 중심이었던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된 공간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서울의 고유한 브랜드를 창출하며, 이를 기반으로 도시 경쟁력을 제고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하여 서울시는 한강을 열린 형태로 확장 및 발전시키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남산을‘인간중심의 전통, 문화, 예술이 녹아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로 변화시키는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 서울시의 거리들을 인간 중심의 공간, 역사와 문화체험의 공간, 보행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는 거리 르네상스 프로젝트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람직한 일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종로 뒷골목 개발정책의 일환으로 피맛골을 철거하고 재개발에 나서고 있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종로에는 항상 높은 어른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이라 서민들이 매번 절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큰 길 양쪽 뒤편에 낸 좁다란 길에 형성된 고을을 뜻한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술집, 모주집, 장국밥집 등의 맛집이 모이게 되었고 얼마 전까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즐겨 찾는 명소였지만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명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깃거리, 즉 역사가 필요한데 이는 돈으로도 못 사는 것이다.
건축과 디자인을 통한 서울시의 브랜드 창출 시도는 기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가장 형성되기 어려운 역사와 이야기는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역사와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건축과 디자인으로 서울이 진정한 세계 속의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